캐나다 Banff

Banff 하면 금방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물론 미주, 캐나다, 유럽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는 산악 휴양도시이지만...
그럼, 캘거리 (Calgary) 하면 어떨까.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 캘거리는 많이 익숙한 곳이다.  동계올림픽이 열린다고 하면
눈이 많이 오고, 아름답고, 교통연결도 좋다는 뜻이다.   반프 Banff는 캘거리에서 1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서, 다시 버스로 2시간을
들어가는 Rocky 산맥 깊숙한 곳에 위치한, 특히 온천 (hot springs)이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지난 30여년간 세계적인
미디어 페스티벌이 매년 열리고 있다.  Banff TV Festival.

세계 각국 방송사와 제작사들이 만든 Tv 프로그램의 우열을 가리는 국제상 과 각종 세미나, 마케팅 행사 등이 열린다.
매년 1,500명 이상의 많은 참가자들이 미주,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반프를 찾는다.  국제상 뿐만 아니라  TV매체를 통해
방송되는 콘텐츠의 홍보, 유통, 협력, 연구 등 모든 관련 분야를 망라한 행사가 마련되고, 관련 전문가들이 직접 대면해서
상담하고 현안에 대해 협의하고 게다가 스타급 제작자, 연기자, 배급자가 초빙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가까이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Banff 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거나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반프는 미국에 대한 일종의 컴플렉스? 를 지닐 수 밖에 없는 캐나다가  미국적인 행사를 벗어나  캐나다 만의 미디어 행사를
구현하고자 한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목받는 스타들과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미국인이고 미국 프로그램들이다.
물론 유럽의 참여는 꾸준한 것 같다.   금년에도 Asia 에서 참여한 국가는, 일본 NHK (꾸준히 반프에 참여하고 투자하는),
한국 KBS, 중국 CCTV 정도인것 같았다.   이들을 위한 Asia Panel 이란 1시간 세션을 마련해서, 본인이 한국 panelist로 참여
했다.  NHK, CCTV산하기관, 그리고 러시아 프로덕션 대표가 panelist로 초빙되었는데, 매우 원론적인 본국 방송사 소개와
동향을 알려주는 수준이었고, 참석자들의 질문 또한 너무 기초적인 것에 머물었다.  그 자리에서 한국방송의 현주소를
구체적으로 짚어주는것이 그들에게 매우 부담스러울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프는-- 아름다운 산악 도시?  마을 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린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산의 실루엣과 하늘과 구름.. 안개... 그리고 변화무쌍한 날씨까지.
어딜 봐도 아름답고 거대하고 경외감이 든다.
그 깊은 산에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을 개척한 서구인들의 개척정신, 투지가 놀라울 뿐이다.

반프 마을 한켠에 Banff Museum 이 있다.  이 곳을 처음 개척한 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 유품등이 잘 보존되어있다.
온천이 유명해 건강을 위해 이곳을 자주 방문하던 청년이 정착하게 되고, 보스톤 명문가의 딸이 그와 결혼하면서
첫번째 정착가정이 생겼다고 한다.   그들이 살던 작은 집은 집안의 집기와 소품, 책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지금이라도 차한잔 마시고 가라는 안주인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듯 했다.

museum 을 보러온 몇몇 외국인들 -- 그들은 미국 동부, 중부 각지에서 여행온 사람들인데
한 초로의 미국 아줌마와 얘길 나누며 박물관을 돌았다.  그녀는 2년전 남편과 사별하고, 힘들게 지내다
이제 처음으로 먼길 여행에 나섰다면서 뉴저지에 오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와 이름까지 메모해 주었다.

반프에 머무는 날들 대부분 -- 비가 오고 쓸쓸한 날씨였다.
어느 하루의 반나절 -- 화창하게 개어 호텔에서 행사장까지 첨으로 걸어서 오갔다.
자전거에 익숙한 동료는 자전거로 오가며 그 일대를 잘 구경했노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Banff 와 Calgary 날씨는 더욱 고약해졌다.
하늘의 먹구름과 산위의 설경이 한없이 펼쳐졌고, Bus 옆자리의 외국인들은 대부분
지쳐 떨어졌고, 한 지긋한 나이의 남자분은 계속 아이패드를 무릅에 놓고 책을 읽는 듯 했다.
막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이 패드 --  의 유용성.





윤정희와 백건우 사람

초등학교 시절 내 방 한쪽 벽에는 신인 여배우 윤정희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분명 내가 어느 잡지에선가 오려 붙여놓았을거다.
쌍커풀 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색한 눈매 였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에
그녀는 격이 있는 아름다움과 영리함을 동시에 갖춘 매력적인 여배우였다.

당시 여배우 트로이카 - 는 문희, 남정임, 윤정희 였다.
그래도 나는 언제나 윤정희가 제일 이라고 생각했다.
모름지기 백치미로 버티는 다른 두 배우들보다 한 수 위였다. 윤정희는.
나는 그녀의 정형화되지 않은 얼굴과 이마의 고운 선,  그리고 그녀의 웃는 입매가
좋았다. 

중학생이던 어느날 나는 미국에서 첫 귀국연주회에서 '재미'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처음 보았다.
큰 키에 흰색 터틀 셔츠를 받쳐입은 선하디 선하게 생긴 청년 피아니스트 - 그는
그랜드 피아노와 너무 잘 어울리는 연주자였다.  그의 연주를 그 뒤로 거의 매번 찾아다니며
보고 팬이 되었다.

하루는 신문에 이 두 남녀가 함께 있는 장면의 사진이 실렸다.  이른바 열애설- 이 난것이다.
옥신각신 하는 과정이 있은 얼마 후, 파리에서 둘은 결혼을 발표했다.

학교에 가니 친구들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얘... 네가 좋아하는 두사람이 결혼하네?"

그 후로 백건우, 윤정희 부부는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부부의
모델이 된 것 같다.  마음으로 흐뭇하고 마치 내가 중신을 든 사람처럼 뿌듯하다.

백건우씨는 실력과 성실성을 갖춘 훌륭한 음악가다. 
그에게 윤정희는 예술에 현실을 접목해준 공신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한국에서 백건우씨의 브랜드와 활동영역은 (한국 사회의 특징상) 훨씬 축소되었을것이다.
백건우라는 반려자를 둔 윤정희씨도 실력있는 예술가 남편의 이미지가 큰 힘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예술만 해서도 살아남을 수 없고, 현실만 강조해도 인정받을 수 없는  문화 마켓에서
이들 부부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이상적인 형태로 도와주고 의지하며 함께 걸어온 것이 아닐까 싶다

칸느에서 윤정희 주연의 영화가 좋은 평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그녀 특유의 윤기와 자신감이 많이 왜소해 진 느낌이다.
66세의 나이-  그리고-  미모에만 신경을 쓸 수 없는 생활 때문일지 모르지만
부쩍 세월의 흔적이 두드러져 보인다. 

직접 퍼머도 하고 머리도 자른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서구식 소박한 생활습관은 짐작이 간다.
하지만 배우-는 보여주는 직업이다.  그녀가 배우로 나서는 경우에는
우리가 그녀의 소탈한 생활인의 모습을 함께 공유할 너그러움을 기대해선 안될 것 같다.
지나친 외모지상주의에는 염증을 느끼지만 배우 윤정희를 보면서 배우라는 직업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다시한번 생각케 한다.

어쨌든,

윤정희.백건우
그들을 보면 - 나의 소녀시대가 함께 보인다



위로 생각


얼마전 외국 유학중이던 예쁜 딸을 졸지에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분을 만났다.

딸과 절친한 사이에 함께 유학을 가있어, 그 어머니와도 가끔 만나 딸들 얘기로 웃음 꽃을 피우던 그런 분이다.

그 분의 딸이 돌연 이세상을 하직한지 7개월이 되었다.  한참 추운 겨울 어느날 날아든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이래 -

어떤 말로도 위로를 표현할 수 없었다.  손잡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는. 

늘 밝고 웃음이 떠나지 않던 그 어머니의 얼굴은 반년이 더 지난 시간에도 - 너무 큰 슬픔과 상실감에 수척해 보였다.

'그냥 가슴에 안고 살고 있어요' 하는 말에 - 모든게 담겨 있었다.

매일 아침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바로 한강 고수부지로 차를 돌려, 거기서 한동안 눈물과 서러움을 내뱉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래야, 그 하루동안 감정을 잘 버텨갈 수 있다고 하면서...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그 분의 심정을 함께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리며

떠나간 딸아이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 것 - 밖에는.

그 어머니는 헤어지면서 말한다.  '이렇게 함께 편안히 얘기를 나누고 나니 맘이 좀 후련하군요.'

내일이 되면 그 분은 또 고수부지에 차를 대고 서럽게 울음을 토하겠지.. 긴 하루를

시작하는 고통스런 세리머니를...

위로와 치유를 위해 - 할 수 있는게 무얼까.

맘을 열고 함께 들어주는 일이다.  이야기를, 그 힘든 시간의 삶의 얘기를 --

삶과 죽음의 대명제 앞에선 - 나약하고 무능하고 대책없는 우리 인간일 뿐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에 나를 포함해서 자꾸만 인색해 지는건 아닐까.

가슴에 쌓인 얘기를 털어놓는 것 만으로도 치유가 된다는 말을 상기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가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위로가 되고 평화를 찾을 수 있다면

기꺼이 들어주고 - 또 들어주는 -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 시간이었다.









 



이글루스 가든 -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쓰기.

창의적 환경은 무엇일까 -- 공감글 생각


재미 학자 강인규님이 오마이 뉴스에 기고 한 글입니다.
창의성을 부르짖기만 할 뿐  주위를 둘러보면  정작 달라지는 것은 없어 답답합니다.
공감가는 내용이어서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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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거' 왜 못 만드냐고?
[뉴미디어기획 9] 아이폰-아이패드 충격과 창의성의 근원
10.05.01 18:16 ㅣ최종 업데이트 10.05.01 18:16 강인규 (foucault)
 
대학에서 뉴미디어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깨달은 게 있다. 기술과 사회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기술이나 혁신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소멸하는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사회적 형성'이라는 관점으로 한국사회를 살펴보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우선 "우린 이런 거 왜 못 만드냐"는 질문에서 시작해 보자. 최근 들어 정계와 재계의 지도자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다. 애플의 아이폰과 닌텐도의 게임기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윗분들'의 훈계 속에 양념처럼 들어가기 시작한 '유행어'기도 하다.

 

당사자가 의도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기술과 사회의 관점에서 '우린 이런 거 왜 못만드냐'는 물음은 상당히 전복적인 의미를 갖는다. '우리 사회는 왜 이 꼴이냐'고 묻는 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는 그가 몸담은 조직과 그 조직을 포함하고 국가 모두를 의미한다.

 

  
애플 사의 오랜 모토는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다.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업으로 평가 받는 애플의 저력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훈이다. 위계적인 기업의 문제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윗사람'의 생각이라면 특히 더.
ⓒ Apple
애플
 

못 만드는 이유?

 

결론부터 말해 보자. 흔히 '질문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을 한다. 이 상황에 정확히 부합하는 말이다. '이런 거 왜 못 만드느냐'고 묻는 것은 질문자가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백하는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만들자'고 말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모두 지도자들이다. 조직에서 가장 강한 권력과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사람들 말이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거 왜 못 만드냐'고 묻는 지도자가 많을수록 그걸 만들어 낼 가능성은 낮아진다.

 

두 번째는 이런 질문을 태연히 던질 수 있게 하는 위계적 사회구조다. 위계 사회에서 '왜 못 만드냐'는 말은 질문이 아니라, 질타이고 추궁이며 명령이다. 여기서 자신의 책임은 빠져있다. (자기는 방법을 모르지만) '어떻게든 만들어 내라'고 요구하고 있을 따름이다. 

 

위계적인 조직일수록 소통은 막혀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직된 소통구조 속에서 창의력이 꽃 피기를 바라는 것은 '우린 왜 못 만드냐'는 질문만큼이나 어리석다. 그런 질문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 조직이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 수 없을만큼 위계적이고 경직되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게 두 번째 답이다.  

 

봉건적 위계사회의 비극

 

애플이 동기가 된, '이런 거 왜 못 만드냐'는 질문은 사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 물음은 반성과 각성에 가까웠다. 왜 애플같은 회사가 일본에서는 태어날 수 없었느냐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혁신과 첨단기술의 대명사가 된 나라에서 말이다. 그 쟁쟁했던 소니, 도코모, 토요타의 일본에서 말이다.  

 

흥미롭게도,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주목할만한 답변마저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나왔다. 2008년 2월 25일자 <뉴스위크>가 '애플이 일제가 아닌 이유'를 설득력 있게 분석한 것이다. 크리스찬 캐릴 기자는 "창의력의 빈곤은 일본의 독특한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수직통합된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위계적 경제환경에서는 융통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위계적 조직에서는 반대가 불가능하다. 반대가 불가능한 곳에서 창의적 사고도 불가능하다. 창의성은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위계적 기업문화가 재계를 넘어 정치, 교육, 문화의 모든 영역까지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사회 전체가 단일 기업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일본 주식회사(Japan Inc.)'로 전락한 것이다.

 

기업 내부에서 반대가 불가능하면 밖에서 반대를 해 주어야 한다. 국민이, 언론이, 대학이, 정부가 말이다. 그러나 이들마저 기업조직의 일부가 되고 나면 창의력이 발휘될 여지는 사라지고 만다. '회장님' 좋아하는 언론이나,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는 사회와 기업 모두에 해가 될 뿐이다.

 

하물며 정치 지도자가 '국가 CEO'를 자임하거나, 기업이 대학의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나라에서 희망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기업으로서의 애플이 갖는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애플은 변함 없이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에 서 있었다"고 말했다.
ⓒ 공개자료
애플

 

애플과 인문학의 관계

                                                                 

 

현재 한국 교육계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 변화는 '통폐합'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예컨대 음악과 미술 수업을 '통폐합'하고 (이런 '창의적 발상'이 가능한 나라에서 아이폰이 안 나온 게 놀라울 뿐이다), 초등학교에서 쉬는 시간을 5분으로 '통폐합'하고, 대학 전공을 "사회 변화의 요구에 따라" 절반 수준으로 '통폐합' 하겠다는 것이다.

 

쉬운 말로 하면, '노는 시간'을 없애고, '돈 안 되는 전공,' 즉 인문학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 뒤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승인과 지지가 있다. 정부는 이런 '교육개혁'을 주도하면서 '창의성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야심찬 "한국형 스티브 잡스 양성계획"도 나왔다. "탈락시스템에 따라 3단계의 검증 과정을 거쳐" 10명 안팎의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를 선정한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선발할지 모르지만, 대단한 '스펙'을 갖춘 실력자들이 몰려들 게 틀림 없다(조롱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지원해도 탈락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어쩌나. 스티브 잡스는 한국 정부가 그렇게 없애고 싶어하는 두 골칫거리의 산물이니 말이다. 바로 '인문학'과 '노는 시간'이다.

 

지난 1월,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아이패드'를 선보인 날이었다. 그는 애플 사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대형 스크린으로 표지판 사진을 보여주었다. 교차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내판이었지만, '길 이름'이 독특했다. 서로 엇갈린 두 개의 표지판에는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Technology)'이라고 쓰여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의미를 설명했다.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입니다. 애플은 언제나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 존재해 왔지요."

 

  
미국의 대학에서 인문학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은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인문/예술/사회과학 프로그램 웹사이트. "위대한 사상이 세계를 바꾼다"는 표어가 보인다. 하프를 연주하는 사진 오른쪽에 "컴퓨터는 음악이론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음악과 컴퓨터 기술을 접목시킨 최신 연구들을 소개하고 있다.
ⓒ MIT
MIT

 

'미국식 교육'의 중심은 인문학

 

'미국식 교육'을 잘 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식 교육을 '돈 되는 실용교육'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지역과 규모를 막론하고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대학의 공통점이 있다. 하나 같이 뛰어난 인문학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첨단 기술연구로 알려진 매사추세츠 공대(MIT)는 훌륭한 철학, 언어학, 문학, 예술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며,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 수업을 들어야 한다.

 

미국 대학의 전통은 크게 두 축이 있다. 연구중심 종합대학과 학부 중심의 인문대학이 그것이다. 인문학은 종합 연구대학에서도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라 불리는 학부 중심 인문대학에서 더욱 큰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오바마 대통령도 콜럼비아 대학으로 옮기기 전 '옥시덴탈 칼리지'라는 학부 인문대학을 다녔다. 비록 한 학기만에 그만 두기는 했으나, 스티브 잡스가 다녔던 '리드 칼리지'도 학부 중심 인문대학이었다. 그는 청강으로 들었던 서예수업을 '생애 최고의 수업'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생애 최고의 선택'으로는 '학교를 때려 치운 것'를 꼽았지만 말이다(게다가 대학 졸업 축사에서 이 말을 했다).

 

미국 대학이 '리버럴 아츠'라는 이름으로 가르치는 것은 뭘까? 크게 세 가지다. 커뮤니케이션(소통) 능력, 비판적이고 윤리적 사고, 분야에 얽매이지 않는 폭넓은 교양.

 

미국에서 인문교육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 실무 지식이나 실용적 기술'의 반대 의미로 사용된다. 다시 말해, 한국 정부가 싫어하는 것들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과정인 셈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불온 교육'을 성공 비결로 내세운 것이다.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리드 칼리지. 학부 중심으로 인문학적 교양을 가르치는 미국적 전통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 가운데 하나다. 스티브 잡스는 이 학교를 한 학기 동안 다닌 후 자퇴했다.
ⓒ 공개자료
잡스

인문학, 왜 중요한가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실용주의가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왜 '돈 안 되는' 교육이 대접을 받는 것일까?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저 돈만 되는 게 아니라,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문학 교육은 '고전 교육'이다. 고전(classic)이란 세월이 흘러도 의미를 잃지 않는 인류의 성과물을 말한다. 실무용 지식과 기술은 하루가 멀다고 변하지만, 소통능력, 비판능력, 윤리의식, 보편적 교양의 가치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문학적 기초가 있는 사람은 실무 지식도 쉽게 배운다. 쉽게 배울 뿐 아니라, 제대로 배운다. 제대로 배울 뿐 아니라, 그 지식을 올바로 쓸 줄 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교육을 투자에 비유한다고 하자. 당신이 현명한 사람이라면 어디에 투자하겠는가? 

 

지금 한국의 기업과 정부와 대학이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실무적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소통능력, 비판능력, 윤리의식, 보편적 교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주장하는 '대안'은 죽어가는 인문학을 뿌리까지 없애고 그 자리에 단편적인 실용지식과 기술을 채워 넣는 것이다.

 

인문학적 교양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인문학에 존경심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미래 경쟁력의 토대인 창의력까지 죽이고 있다는 점이다. 인문학적 비판 능력은 '남과는 다른 생각,' 즉 창의력의 토대가 된다. 인문학이 강조하는 윤리의식은 배려와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할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에서 애플이 나올 수 없는 세 번째 이유다. 

 

  
<와이어드>지는 2009년 6월호 표지기사를 통해 소셜 미디어 혁명을 다루면서 '신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온라인상에서 펼쳐지는 협력과 공유 운동이 경제모델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와이어드>는 이 새 경제모델을 "신 신경제(New New Economy)"라고 이름 붙였다.
ⓒ Wired
신 사회주의

 

경쟁교육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유치원생이 영어공부 하느라 놀 시간이 없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단다. '무한 경쟁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이 성적을 비관해 아파트 난간에서 몸을 던진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단다. 자본주의는 경쟁체제이고, 경쟁을 권장해야 '선진 일류국가'가 될 수 있는 만큼, 이런 '부작용'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진국 문턱'에서 좌초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국가 지도자가 '선진 인류국가'와 '선진국 문턱'을 말할 때마다 내 입에서는 이런 무엄한 소리가 흘러 나온다.

 

"젠장, 그 문턱은 길기도 하다…."

 

유치원 시절에 듣던 '선진국 문턱' 이야기를 중년이 다 되어서까지 듣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장담컨대, 내 생전에 한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비관적인 이유가 있다. 한국 정부가 말하는 '선진국'은 다가서면 사라지는 신기루다. 당나귀 머리 앞에 달아놓은 당근. 주인을 태운 당나귀는 당근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걷지만, 죽는 날까지 당근을 입에 대지 못한다. 그 당근은 새 당나귀의 머리에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내 비관론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정부가 말하는 '경쟁교육'은 이미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경쟁 교육은 나누고 배려하는 사람을 배출하지 못한다. 한국식 경쟁 교육에서 앞서가는 '비결'은 빼앗고 감추는 것이다.

 

그러나 리눅스, 위키피디아, 플리커, 앱스토어, 트위터, 페이스북의 성공에서 보듯, 뉴미디어 시대에서는 '나눔'과 '배려'가 새로운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와이어드>는 이처럼 협력에 기반한 미래의 공동체 경제를 '신사회주의(New Socialism)'라 부른다. 내가 나누면 남도 나눌 것이고, 공동체는 번영하게 된다.

 

모든 것을 떠나서, 서로 밟고 밟히는 곳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이것이 한국인들의 행복지수가 낮고, 자살률이 높고,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이유다. 아이폰을 왜 못 만드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의 경쟁체제를 유지하다간 '한국형 잡스'나 '선진 일류국가'보다 사회 붕괴가 먼저 찾아올 것 같으니 말이다. 

 

 

 

 


자연

휴일엔 산이 부릅니다.

초봄은 초봄대로

무르익은 초여름은 또 그대로

산은 그냥 모든 것 입니다.

꾸미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

사람을 온전히 받아주는 넉넉함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마음과 몸이

함께 비워집니다.

일요일에는 북한산을 올랐습니다.

좋은 산들이 많지만

서울의 산은 -- 역시 북한산 입니다.

표현이 부족할 만큼  봄 숲의 청명함과 여린 봄 꽃들의
 
아름다움은 낙원 그자체 입니다.

산에 가십시요.

어떤 기분일지라도 산에 들어서는 순간

숲에 부는 바람이 다 걷어가 줍니다.

산에 가면 용서하고 이해하고 받아주는

거룩함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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